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 박주석

스핀라자에 이어 이제는 헴리브라까지. 질병도 낯선데, 약 이름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입에 잘 붙지도 않는 약을 맞게 해달라고 외친지, 1년이 넘어갑니다. 2022년 1월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는 의약품 접근권 보장을 위한 투쟁을 선포했죠. 인간의 생명을 예산과 효율의 잣대로 판단하는 대한민국 의료권력에 대한 투쟁이었습니다.

이 약들은 언론에 ‘수억에 달하는 초고가 약’이라며 가격만 강조되죠. 하지만, 그 약을 맞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지, 약이 왜 비싼지, 약을 맞을 수 있는 대상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투쟁에 나서기 전까지 말이죠.

빵빵이가 앓고 있는 병인 혈우병은 피가 한 번 나면 멎기 어려운 질환이에요. 유전병으로, 피를 잘 굳을 수 있게 도와주는 단백질이 부족한 채 태어난 것이죠. 이에 대한 치료는 이 부족한 단백질을 계속해서 주사로 넣어주는 수밖에 없어요. 주사를 맞으면 그 단백질이 체내에서 사라질 때까지는 혹시나 다쳐도 안심할 수 있는 거죠.

<aside> 📌 주사실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라고 하고는 팔다리를 고무줄로 묶어 계속 두드려댄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엄마엄마’ 하고 울면서 나를 쳐다보고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괜찮아, 하나도 아프지 않아’라는 말뿐이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2022년 11월 16일에 쓴 조은별 씨의 일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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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빵빵이가 맞고 있는 주사는 매주 2번 맞아야 해요. 게다가 피가 흐르는 혈관을 찔러야 해요. 주사를 자주 맞다 보면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 의료인은 손등, 발등, 팔뚝, 목을 돌아가며 주삿바늘을 찌르고 또 찔러요. 성인은 금방 맞을 수 있는 주사를 빵빵이는 20~30분이 걸려요. 빵빵이는 실패가 반복되면 경기를 일으키듯이 울고, 이제는 가운을 입은 사람만 봐도 자지러지게 운다고 해요. 주사 맞은 날은 밤마다 잠을 못 자고 밤새 운다고 해요.

<aside> 📌 간호사 둘이서 아이의 오른쪽 손등 혈관을 잡았다. 시작한 지 20분이나 지나있었다. 지쳐있는 아이에게 핑크퐁 영상을 보여주며 달래고 있는데, 간호사가 실수로 아이 혈관이 잡힌 주사줄에 다리가 걸려 바늘이 들렸다. 그때부터 아이가 다시 발작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20분 동안 울다 지친 아이는 병원을 나와 차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런 고통 속에 살아야 할까. 자신이 없다. (2022년 11월 30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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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 상황을 보내던 와중, 헴리브라라는 신약이 나왔어요. 헴리브라는 한달에 한 번 정도만 맞으면 되는 약이에요. 그리고 혈관이 아닌, 피부 아래에 놓는 주사로 여러 번 찌를 필요가 없어요. 이 약은 초국적 제약회사 로슈의 자회사인 주가이제약이 만들어, 국내에서 JW중외제약이 유통하고 있는 약이에요. 이미 2019년부터 국내 환자들이 맞기 시작했고, 2020년 5월부터는 “항체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어요. 빵빵이는 “비항체 환자”에요. 항체 환자는 전체 환자의 10%에 불과해요. 나머지 90%는 보험 적용을 받고 있지 못한 것이죠. 이미 세계적으로 비항체 환자들에 대해 보험 적용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너무 늦은 것이죠.

<aside> 📌 “심평원에서 약값을 더 낮춰오라고 하는데 더 낮추기는 어렵다. 본사에서는 금액을 더 낮출 바에는 한국 시장 철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맥주사보다 싸게 팔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도 혈우병 환자들에게 돈만 밝히는 회사처럼 보이고 싶지 않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 12월 21일. 중외제약 통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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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 대한 보험 적용은 단순히 환자가 이 약도 맞을 수 있고, 저 약도 맞을 수 있다는 선택권의 문제가 아니에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생각해보면 생존권의 문제인 것이죠. 그나마 다행히도, 이 약을 보험 재정으로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작년 7월에 이 약을 비항체 환자도 맞을 수 있게 하겠다고 결정을 했어요. 그러나 정부는 약이 비싸다는 이유로 이 약이 건강보험 재정으로 환자에게 맞출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검토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약이 너무 비싸다고 판단했고, 제약회사보고 약값을 깎으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죠. 제약회사는 당연히 한 푼이라도 더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하고, 그때부터 이 약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어서 나섰어요. 기자회견도 하고, 의원실에 찾아가 호소도 하고, 제약회사도 만나고, 심평원, 복지부 등 정부도 만났어요. 하지만 여전히 빵빵이는 약을 맞기 어려워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