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장애인 당사자 여러분!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시민 여러분! 그리고 장애 해방을 위해 끝까지 싸우고 있는 동지 여러분! 투쟁으로 인사드립니다. 저는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 오영철입니다. 저는 오늘 누군가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장애인 당사자로서 이동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고, 차별과 배제 속에서 살아왔으며, 장애인이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싸워온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지예산 몇 푼을 더 달라고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배우고, 일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과도한 요구입니까? 이것이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요구입니까?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이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25년 동안 거리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이후 장애인들은 목숨을 잃어가며 이동권을 외쳤고, 2021년부터는 출근길 지하철을 69차례 넘게 타며 이동권과 교육권, 노동권과 자립생활 권을 예산으로 보장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지하철을 타고 싶어서 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지하철조차 타지 않으면 아무도 장애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 죽어도 세상은 조용했습니다.
시설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국가는 침묵했습니다. 집 안에서 고립된 장애인이 구조를 요청해도 예산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싸웠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죽음을 향한 투쟁이 아닙니다. 누구도 죽지 않고, 누구도 버려지지 않으며,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투쟁입니다.
그러나 정권은 바뀌었어도 장애인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장애인의 권리를 미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도 장애인권리예산은 여전히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주권을 말합니다. 정부는 민생 회복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민생 속에 중증장애인의 삶은 포함되어 있습니까?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 배울 기회를 빼앗긴 장애인,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장애인, 활동 지원이 부족해 집과 시설에 갇혀 살아가는 장애인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닙니까?
대한민국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입니다. 국가는 장애인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며,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예산은 부족하다고 하면서 시설을 유지하는 예산은 계속 편성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지원 예산은 통제하면서 장애인을 분리하고 격리하는 정책은 계속됩니다.
이것은 국가가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명백한 권리 침해입니다. 정부는 2027년 국가예산을 800조 원 이상 편성하겠다고 합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100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한 예산은 없고, 장애인평생교육 예산은 논의조차 하지 않습니까? 왜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폐지와 삭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까?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장애인의 삶을 국가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산은 숫자가 아닙니다. 예산은 국가가 누구의 삶을 지킬 것인지 보여주는 정치적 선택입니다. 그래서 장애인권리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행정적 실수가 아닙니다.
결국 장애인의 이동을 막는 선택이고, 배움을 포기하는 선택이며, 노동을 부정하는 선택이자 다시 시설과 집 안에 가두는 선택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7월 기획예산처와 보건복지부에 2027년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답하지 않았고, 관계 부처는 장애인의 권리를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정부는 ‘지방사무다’, ‘중복예산이다’, ’재정여건이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장애인의 권리는 지방사무가 아니며 장애인의 생존은 중복예산이 아닙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는 재정여건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에 강력히 요구합니다.
첫째! 특별교통수단 운전원 인건비를 국비로 책임지고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십시오. 지역에 따라 이동권이 달라지는 차별을 즉각 끝내십시오.
둘째! 장애인평생교육법의 취지에 맞게 학교형태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 대한 국가예산을 즉각 편성하십시오. 장애인도 평생 배우고 성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셋째!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한시적인 시범사업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로 법제화하십시오.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비장애인 중심의 생산성과 효율성만으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차별을 고발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활동은 분명한 노동입니다.
넷째! 활동지원서비스와 탈시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을 대폭 확대하십시오.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해 생존을 위협받는 장애인이 없도록 하십시오. 시설에서 나오고 싶어도 지원이 없어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이 없도록 하십시오.
다섯째! 장애인권리예산을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책임 회피를 중단하십시오. 장애인의 권리는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없습니다. 중앙정부가 국가의 책무를 다하십시오.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인정받고, 사회에 참여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