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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포일자 | 2026. 10. 27.(화) |
| 제목 | [성명] 돌봄이 권리가 되려면, 지원과 함께여야 한다 - 10월29일을 ‘돌봄∙지원’의 날로 지정하라! |
| 붙임자료 |
오늘 10월 29일은 유엔이 2023년 총회 결의로 정한 ’국제 돌봄과 지원의 날(International Day of Care and Support)’이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이날, 유엔이 ’돌봄’과 함께 나란히 적은 ’지원’은 한국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금 이 사회에서 ’돌봄과 지원’의 ’지원’이 지워지고 있다.
돌봄을 둘러싼 논의는 이 사회에 중요한 사실을 일깨웠다. 인간은 누구나 취약하고, 생애의 모든 순간에 서로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이다. 홀로 선 독립적 개인이라는 상은 허구였고, 그 허구를 떠받쳐 온 것은 가족과 여성에게 떠넘겨진 보이지 않는 돌봄이었다.
장애인운동 역시 의존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의 조건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모두가 의존한다”는 말이 결론이 될 때, 하나의 질문이 사라진다. 같은 의존이 왜 어떤 이에게는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시설에서의 평생이 되는가.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의존 그 자체가 아니라 의존이 놓이는 조건이다. ****
누가 결정하는가, 어디서 사는가, 누가 책임지는가.
한국에서 돌봄의 사회화는 ’누가 돌볼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가족이 감당하던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일, 곧 돌볼 사람과 자리를 늘리는 일이 과제가 되었고, 그 성과는 기관의 수와 이용자의 수, 제공 시간으로 셈해졌다. 이 셈법 안에서는 시설의 정원도, 요양병원의 병상도 돌봄의 확충으로 계산된다.
한편 장애인운동이 시설에 맞서 세운 자기결정권의 언어는 제도 안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좁혀졌고, 결정하기 어렵다고 여겨진 이들을 다시 시설로 밀어내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공급의 언어도, 능력의 언어도 의존이 지배로 바뀌는 조건을 묻지 않는다. 우리가 ’지원’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설에서도 사람들은 돌봄을 받는다. 거주시설에서 ’돌봄’은 격리와 통제의 현실을 정당화하는 말로 쓰여왔고, 정부는 올해 예산에서도 거주시설 기능보강 예산을 늘렸다. 장애인이 겪어온 것은 의존 그 자체가 아니라, 의존이 격리와 통제로 바뀌는 경험이었다. 지원은 그렇게 바뀌지 않도록 하는 조건의 이름이다.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 내 삶을 결정할 권리, 결정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 의사를 해석하고 실현하도록 돕는 국가의 의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 보장할 국가의 책임. 이것이 활동 하나하나를 거들어주는 일로는 담기지 않는 지원이다.
지원이 지워진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숫자가 말해준다. 올해 3월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전국에서 시행되었다. 그러나 8월까지 신청한 9만3천여 명 가운데 65세 미만 장애인은 1,184명, 1.3%에 불과하다. 장애인은 사업이 시작되고 6개월이 지나서야 신청할 수 있었고, 노인은 동네 주민센터에서 신청하지만 장애인은 시·군·구청까지 찾아가야 하며, 대상도 지체·뇌병변 장애인으로 묶였다.
정부의 첫 실태조사는 돌봄 수요를 셈하면서 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을 그 수요에 넣지 않았다. 시설에 있는 사람은 이미 ’돌봄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취급된 것이다. 노인 돌봄의 체계 위에 장애인을 늦게, 좁게, 다른 창구로 덧붙인 이 구조는 65세라는 경계에서 더 선명해진다. 통합돌봄 안에서도 65세 이후 활동지원을 선택한 장애인은 장기요양의 방문목욕·방문간호를 함께 받을 수 없다. 올해 장애인활동지원법이 개정되어 65세 이후에도 활동지원을 선택할 길이 열렸지만, 시행은 2027년 7월이고, 65세 이후 장애를 등록했거나 그 전에 신청하지 않은 장애인은 여전히 제외된다. 나이를 기준으로 장애인을 지원의 체계에서 돌봄의 체계로 옮기는 기준, 시설에 있는 사람을 계산에서 지우는 기준이 같은 뿌리에서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가 제도에서 빠질 때, 통합돌봄은 지역사회의 이름을 단 공급 연계에 머문다.
’돌봄과 지원’은 서로를 밀어내는 말이 아니다. 지원 없는 돌봄은 언제든 시설로, 통제로 돌아갈 수 있다. 지원은 돌봄이 권리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유엔 결의는 지원이 자립적으로 살아가고 지역사회에 포함되기 위한 필수적인 부분임을 분명히 했다. 유엔이 두 단어를 함께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22대 국회에는 돌봄기본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돌봄을 권리로 세우려는 그 노력이 장애인을 다시 ’돌봄의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에 지원을 함께 새기자고 제안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0월29일, ‘2026년 국제 돌봄과 지원의 날’을 맞아 국회와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에 요구한다.
유엔에서 지정한 ’돌봄과 지원’이라는 이름을 온전히 되살려라. 지원은 돌봄의 한 항목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로서 법과 제도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장애의 유형과 나이, 시설이라는 경계로 지원받을 권리를 나누지 말라. 공급을 늘리는 것에 멈추지 말고, 누구나 지역사회에서 자기 삶을 결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라. 돌봄이 권리가 되는 길은 지원과 함께 가는 길이다.
“돌봄이 권리가 되기 위해 지원을 요구한다!”